유령의 잡다생각방
내 마음조차도 모르는 이가 어찌 다른 이를 안다는 말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2013년 11월 14일 목요일
연디와 디엣, 그 미묘하고도 거대한 차이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기 때문에.
마음을 공유하고 서로를 보듬어 주며 사랑을 표현하는 그 꼴은 이 추운 겨울을 커플이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자 솔로 마음에 칼집을 내서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 되겠다.
디엣은 짜릿하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을 단 한 사람에게만 공개하기 때문에.
서브에게는 내 몸과 마음 전부를 그 또는 그녀에게 맡기고, 그 또는 그녀가 허락하는 최소한의 감정만을 가질 수 있기에 자신의 소중함과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는 시간.
돔에게는 서브가 온전히 맡긴 몸과 마음을 소유하고, 그 또는 그녀를 제어하며 이끔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시간.
그래서 디엣도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커플의 힘이자 솔로 마음에 부러움이라는 상처를 내는 일 되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민했다.
디엣을 하는데 그 사람에게 온전히 날 맡길 수 있을까.
연애를 하는데 내 모든 것을 그에게 바칠 수 있을까.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했을 이 문제에 대해 어느 날 누군가가 답을 냈다.
"그럼, 연애와 디엣을 함께 하는 건 어떨까?"
그리하여 다시 수많은 사람들을 고민의 도가니로 밀어넣어 팔팔 끓이는 희대의 고민거리, "연애 디엣"이라는 것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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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디엣이란 대체 뭘까?
초보 돔인 나는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글을 읽으며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생각한 결과는 '평소엔 연인같다가도 플 할때는 디엣같은 사이'였다
에셈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글이 올라오고, 그 중에는 연디에 대한 고민이나 연디 경험담(특히 펨들의 달달한 글은 대체로 다 연디인듯 싶었다)도 많이 있다.
그 다양한 글에서 그려지는 연디는, 평상시에는 연인같은 사이로 지낸다는 게 핵심이었다.
연인이란 서로 동등한 관계다.
사랑을 주는 만큼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관계.
내가 하는 만큼 상대도 내게 해 줬으면 하는 관계.
그래서 상대에게 불평도 할 수 있고, 일명 '밀당'이 성립할 수 있는 관계가 연인 관계다.
디엣 관계는 어떨까.
디엣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믿음을 주고받는다.
당신은 나를 해치지 않고, 나를 아껴줄 거라는 믿음.
서브의 이 믿음에 돔은 책임감으로 답한다.
그대를 다치게는 하지 않는다.
롤러코스터같이, 위험의 감각을 느끼면서도 생명에 지장이 없도록 '적당히 풀어진' 안전장치를 준다.
그게 돔이다.
에셈이라는 이름의 롤러코스터에서 안전장치를 계획하고 코스를 설계하는 건 돔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서브는 그런 돔을 믿고, 롤러코스터를 타며 즐긴다.
하지만 연디는 동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즉 돔은 롤러코스터의 설계와 안전장치 계획 단계에서부터 서브를 끼워넣게 된다.
안전장치를 직접 설계하고 코스를 체험해본 서브는 그 안전성을 확실히 믿고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
하지만, 안전장치의 역할과 코스 특성을 이이 알고 있는 서브는 롤러코스터를 재미없어하게 된다.
연디가 불안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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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서브들 중에는 연디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 연디라는 개념은 확실히 매력적인 개념인 것 같다.
날 사랑하기 때문에 날 가진다...
근데, 사랑과 가지는 것 사이에는 꽤 먼 거리가 있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동등한 관계로서의 연애와 소유 관계로서의 디엣
그 중에서 내가 택해야 하는 건 뭘까?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지배의 의미
에세머로서의 나는 돔이다.
그리고 돔은 섭을 지배하려는 사람이다.
지배.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집단, 조직, 사물 등을 자기의 의사대로 복종하게 하여 다스림.'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뜻으로는 '외부의 요인이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침' 이라는 뜻이 있단다.
이 두 가지를 통합하여 요약하면 지배한다는 일은 '자신이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자신의 의사대로 타인을 복종하게 만드는 데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을 지배라 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런 지배를 꿈꾸는 사람이다.
#2.
구인글을 쓰든, 섭의 구인글에 쪽지를 보내든, 시작부터 섭을 지배할 수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섭도 사람이다. 내가 쓴 구인글이나 내가 보낸 쪽지가 마음에 들 수는 있어도, 그 쪽지나 글만을 보고 바로 무릎을 꿇는 섭은 거의 없다.
특히 펨섭은 더 그렇다. 여자로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펨섭들은, 복종한다는 말을 처음부터 하는 일이 절대 없다.
그저 내게 어느 정도의 호감만을 가지고 있는 펨섭과 코드를 맞추고, 길들여 복종시키고, 최종적으로는 내 말에 스스로의 마음을 바쳐 순종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멜돔이 바라는 지배의 최종 형태다.
#3.
에셈 커뮤니티에서 보면, 펨섭들이 쓰는 경험담의 대부분에서는 '내가 주인님의 기대에 따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들이 보인다.
이런 고민들은 지배의 최종 형태에서 펨섭이 멜돔에게 보이는 순종의 형태다.
그런 글만 보니, 초보 멜돔의 기대치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잊지 말 것.
펨섭을 순종하게 만든 그 돔도, 돔 아래서 순종하는 그 섭도, 처음부터 순종 관계는 아니었다.
그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안 그래도 만나기 힘든 펨섭과의 인연은 아주 가볍게 끊어질 것이다.
멜돔으로서 펨섭을 지배하고 싶다면, 펨섭에게 자신이 지배자로서의 아량과 믿음을 줄 수 있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펨섭을 만나 인연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다.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욕불에 대한 짧은 생각
이 세계에 발을 디딘 지도 3년, 긴 시간동안 나름대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내 나름대로의 철학을 어설프게나마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난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다.
직접 경험하는 것은 부족함을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 모른다만, 돔은 섭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고 난 아직 내 섭을 책임질 수 있을지 모르겠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쪽지 보내고 구인글을 쓰고 하는 건, 아마도 직접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일거다.
이 세계에서, 이런 마음은 보통 '욕구불만', 줄여서 '욕불'이라 한다.
구인글을 쓰러 구인글 전용 공간에 들어가면 은근 많이 보는 제목이 '준비된 펨섭'이다.
근데, 대체 뭐가 준비되어야 준비된 펨섭인지 난 잘 모르겠다.
펨섭도 사람이다.
다만 자신이 믿는 (멜이든 펨이든) 돔을 선택하고, 그 돔에게 자신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자유를 일부 맡기는 사람일 뿐이다.
더군다나 요즘 세상이 좀 험한가. 이 세계는 조금만 삐끗하면 신문 사회면에 나기 딱 좋은 일들을 많이 벌이는 세계고, 그만큼 돔이든 섭이든 각자의 준비가 필요한 건 인정한다.
그런데 '준비된 펨섭'이라는 글 뒤에 보이는 감정은, 왠지 모르게 '욕불'같다.
내 말에 뭐든지 따라라.
난 돔이니까 내가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는 따지지 마라. 난 너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이고, 넌 내 말만 따르면 그만이다.
뭐..... 이런 느낌이랄까?
올해 스물아홉. 아홉수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나도 문득 디엣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전에 나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는 지, 고민을 한번 해 봐야겠다.
2013년 7월 26일 금요일
3년만에 열어보는 블로그
취업 시험에서 3번 미끄러졌고, 내가 원하는 직업에서 2년 6개월간의 실제 경험을 쌓았다.
나름대로 일을 열심히 하려 노력하지만 열심히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다치고 실수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꿈이 서서히 멀어지는 듯한 느낌에 한강변에 서서 깊고 검은 물의 매력에 이끌리기도 했다.
일상에 치여 꿈이 멀어지지 않았나 고민도 해 본다.
내가 원하는 일이, 내게 어울리는 일인가도 고민한다.
그렇게, 초보 사회인으로서의 일상을 지내는 나는 2년간의 시간을 고민하며 보냈다.
여전히 초보다.
그래도 달라진 건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대화를 통해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을 인연으로 들이고 싶은지를 천천히 찾아간다.
생각이 깊어진다.
그만큼 조급해지고, 좌절도 겪는다.
인연을 찾는 글에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경우도 많이 겪었다.
스스로가 어떤 형상으로 고정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시도하고, 깨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 또 시도한다.
그게 찌질해 보일 지라도, 내가 필요하다면 하는거다.
그렇게, 초보 에세머로서의 일상을 지내는 나는 2년간의 시간을 공부하며 보냈다.
일상에서든 에셈에서든 나는 초보다.
초보는, 실패가 허락된 몇 안되는 직위 중 하나.
그렇기에 나는 초보로서 많은 것을 실패하며, 마지막의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거다.
스스로가 어떻게 느껴질지라도, 나중에는 다 추억이 될 것 아닌가.
그러니까, 오늘도 열심히 실패하고, 깨져 보자.
2010년 8월 9일 월요일
변바와 에세머의 차이는?
이 밤에 할 일 없어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이나 끄적.. 하려다 보니 문득 생각난 것.
대체 변바와 에세머의 차이는 뭘까?
먼저 나름대로 단어의 뜻을 매겨보자.
변바 : '변태' 바닐라의 줄임말.
- 변태 : 일반적으로 '특이한(특히 성적으로)' 행동양상을 보이는 존재.
특이하기만 하면 상관없는데, 문제는 그게 범죄라는 것.
- 바닐라 : 아이스크림 같은 데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 '바닐라향'의 주인공.
식물이고, 농축액을 뽑아내면 무색무취란다. 그래서 흔히 '보통'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단, '무취'가 아니라는 게 좀 심각한 문제다.
에세머 : 'SMer'의 한글 표기. 말 그대로 'SM'을 즐기는 사람들.
........ 정리를 해보니 뭔가 간단하게 차이점이 보이는 듯 하다. (역시 정리라는 건 좋군?)
그런데,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 '초보' 펨들은 이상하게도 변바를 에세머보다 더 많이 만난다.
그 이유는 뭘까? 요즘 대세는 나쁜 남자라서? 에세머가 변바에 비해 매력이 없어서?
아마도, 변바와 에세머가 '펨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차이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잠시, 남자가 선사시대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역할인 '사냥'이라는 걸 좀 깊이 파고들어 보자.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한다.
"사자는 가젤보다 빨리 뛰지 못하면 굶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냥이란 내 모든 힘을 다 해 목표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로 남자인 '변바'에게 목표는 무엇일까?
아마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여자 쟁취하기'일 것이다.
즉, 변바(사냥꾼) - 펨(사냥감)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반면, 에세머들은 이 '에셈 세계'의 위험성을 잘 안다.
당연히, 이 사람들은 초식동물의 조심성을 가지고 펨에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 이걸 펨의 입장으로 또 바꿔보자.
여기 초보 펨이 있다.
이 사람은 자기 성향을 막 인정한 상태고, 아직 이 세계의 위험성을 전혀 모른다.
그런데, 이 펨 앞에 두 종류의 멜이 나타났다.
한 멜은 자기 모든 걸 다 주는 걸로도 모자라 한강물을 원샷해서 그 물로 별을 격추시켜 브릴리언트 커팅을 해서 펨에게 줄 기세다. (한강물 원샷하면 서울시민은 물부족 현상을 겪는다. 이 녀석은 나쁜남자다)
반면 다른 멜은 낚시꾼도 아니고 펨이 황금어장에 있는 것도 아닌데 찔끔찔끔 밑밥만 던진다.
잠시 위에서 얘기했다. 요즘 대세는 나쁜 남자라고.
그리고 그렇게 펨이라는 사냥감을 낚은 나쁜 남자는, 곧 '변바'의 이름으로 레알 나쁜 남자로의 변태에 성공한다.
...... 이쯤 되니, 왜 변바에게 펨들이 그렇게 많이 낚이는지 답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고한다. 변바를 조심하라고.
그리고, 이런 경고는 들어서 손해볼 것 없다.
2010년 8월 3일 화요일
선택과 포기에 관한 짧은 이야기
본인 성격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절대로 아니다.
애초에 별명을 '유령'이라 지은 이유가 "그저 조용히 유령처럼 활동하고 싶어서"이니 이미 이야기는 끝.
누가 말했더라? "고민이 없는 자는 죽은 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라는 말.
그렇다면 사람이 살아있다는 건 고민을 만들어낸다는 것.
고민을 만들고 싶다면, 몸이든 머리든 바쁘게 움직이면 된다.
즉, 살아있다는 걸 내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다면, 바쁘게 움직이면 된다.
살아있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살기 위해 사람은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사람은 선택하고, 선택의 댓가로 포기한다.
그렇다면, 난 무엇을 선택했고 그 댓가로 무엇을 포기하는가.
새벽은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보니, 거창한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이 거창한 말을 한 마디로 줄이면, "요즘 바빠서 블로그 관리는 저 멀리 던졌다"이다.
말을 거창하게 써서 뭔가 이상한 느낌도 들지만, 애초에 누구 하나 들를 일 없고 그저 글만 쓰는 개인 블로그에서 뭐 아무러면 어떠리.
2010년 3월 7일 일요일
에셈과 욕설의 상관관계에 대한 짧은생각
세상은 작다.
크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팽창하고 있어서 전체 면적을 알 수 없다는 우주 속에서 많고많은 은하들, 그 중에서 고작 한 은하일 뿐인 '우리 은하' 에서도 한귀퉁이에 있다는 태양계를 이루는 13개의 별 중 하나의 위치밖에 안 되는 지구 안애서 아웅다웅하는 게 작은 세상 아니면 뭘까.
이 작은 세상 안에서, 더 작은 시야를 가지고 인간은 살아간다.
인종, 나이, 성별, 국가, 재산, 직업, 취미, 특기.......
이러한 조건들이 뭉치고 모여서 하나의 '사람'을 만들게 마련이니 결국 사람이 바라보는 그것은 그 사람을 이루는 조건에 좌우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그러지 말라고 먼 옛날 조상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도 만들었지만, 속담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작은 시야를 가지고 살았음을 인정하는 게 아니겠는가.
내가 한 발을 딛고 있는, 에셈이라는 이름의 세계 또한 그건 마찬가지겠지.
내 경우는 개인적인 이유로 상대를 비하하는 욕설 사용을 싫어한다.
하지만 세상은 욕설을 좋아하는지, 요즘은 길거리를 가다가도 흔히 듣는게 욕설 되시겠다.
옛날식으로 볼 때 욕설과 가장 거리가 멀듯한 초등학생이 '초딩' 타이틀을 획득할 때 1등공신 정도는 아니더라도 혁혁한 공을 세운 게 욕설 아니던가.
이러다 보니, 나같이 욕 싫어하는 사람은 어디 발디딜 곳이 딱히 없다.
더군다나 내가 한 발을 담근 이 작은 세계에서. 멜돔들은 펨섭에게 말하면서 말에 비속어와 욕설을 기본으로 탑재한다.
이제는 '펨섭=욕설'의 공식이라도 생겼는지 처음 작업을 거는(?) 멜돔 중 꽤 많은 수가 처음 보는 펨섭에게도 욕설로 떡칠한 작업멘트를 날리니, 요즘 한창 인기를 끄는 <추노>의 대사 한토막을 빌려 말하면 "이게 말인지 당나귄지" 싶을 정도.
남이 욕설로 펨들을 꼬시건 작살나건 내 알 바 아니다.
난 내 하고싶은 대로 그냥 맘 편히 살면 그만이지.
남자란, 특히 누군가가 '의지할 대상'으로 삼을 돔이라면 자기 생각을 밀어붙일 뚝심과 끈기정도는 있어야지 않겠는가?